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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7 안다고 말하지 마라

안다고 말하지 마라

CINEMA 2010. 3. 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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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인가 교육 방송에서 시리즈물로 방영되는 여행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 날은 한 여인의 인도 여행기를 방송 중이었는데, 인도가 좋아 몇 번이고 인도를 여행 중이라는 그녀의 낙락한 모습에 사로 잡혀 채널을 고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에서 유독 기억나는 장면은, 그녀가 갠지스 강변 사원 담장에 앉아 성스런 강에 목욕하는 힌두인들을 보며 한마디 던졌을 때다.
“저들은 저 강에 와서 몸을 씻는 것이 평생의 소원 중 하나래요. 그건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건데.”

 방학을 맞아 친척 누나(장주)에게 과외를 받으러 안동에서까지 올라 온 고3 장철은, 자신이 당연시하던 진리가 장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어짐에 혼란스럽다. 장철에게 있어 친구들의 흡연을 저지해 준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지만, 장주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흡연 가능한 지위인 성인과 청소년을 가로 짓는 모호한 경계선도 우스울뿐더러 그 잣대로 훈계하는 선생님은 모순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에 장철은 냉소적 태도일 뿐이라며 그녀의 사고방식을 거부 하지만, 그녀는 장철이 조금 더 넓은 눈을 가지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절대적 진리보다 각자가 가진 삶의 질서에 주목할 것을 조용히 권한다.  

이렇다 할 카메라 기법이나 플롯을 휘잡을 만한 큰 시퀀스는 없지만, 영화는 30분 남짓의 러닝타임 내내 장철과 장주의 소소한 대화를 통해 ‘타인과의 삶’이라는 다소 거대한 주제를 풀어 나간다. 장철은 무뚝뚝한 사투리로 조금은 보수적인 말들을 툭툭 내 던지곤 하는데, 단정적인 어조로 기정‘사실화’된 듯 한 그 말들은 장주를 통해 다시금 허상으로 흩어진다. 사실 정철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은, 12년 내내 보이는 만큼만 알고 아는 만큼만 믿도록 길들여져 온 우리네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함부로 단정 짓는 장철의 버릇은 어쩌면 소통의 부재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가령 ‘과천 인구는 몇이지?’등의 공허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장철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건 마치 그 간 긴 소통에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한 갈구로 보이지 않았는가.  

힌두인들이 성스러이 여기는 갠지스 강이 여행자에게는 한낱 더러운 물에 지나지 않듯 나의 진리가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일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 것, 궁극적으로는 어떤 것에 대한 섣부른 단정을 지양하는 것,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몇 개의 메시지다. 이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영화는, 마지막 씬에서 장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장주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낸다. 아마도 <안다고 말하지 마라>라 해놓고 아는 체 했음에 대한 미안함에서였을 게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에 비하면 이건 너무 사소한 사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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