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주제사라마구 | 1 ARTICLE FOUND

  1. 2010.03.17 눈먼자들의 도시

눈먼자들의 도시

CINEMA 2010. 3. 17. 19:27
눈먼자들의 도시 상세보기



모든 인간이 시력을 잃은 황망한 도시에 유일하게 눈 뜬 여인이 있다. 을씨년스런 설정 속에서, 프레임은 그녀의 눈을 통해 비춰지고 관객은 내내 불편한 진실을 관조하게 된다. 

차례로 시력을 잃어가는 무리 속에서 홀로 눈을 뜬 여인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추악(醜惡) 그 자체다. ‘본다는 것’을 잃은 인간들은 ‘보여 지는 것’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이는 곧 모럴 해저드로 이어진다. 눈먼 자 가운데 군림하려는 집단의 생성과 그 체제 안에서 행해지는 약탈, 강간 등의 행위는 인간의 본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인간의 부정적 본성을 파헤친다는 내러티브 자체는 클리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여전히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영화 특유의 설정 덕이다. 영화 속의 유일한 눈인 여인의 시선은 카메라의 시선이 되고, 그 시선은 곧 관객의 몫이 된다. 까닭에 감정 이입이 용이해져 관객은 영화 속 충격적인 상황에 그대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이 보여 준 풍부한 감정 묘사가 생략된 탓에, 영화는 사건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예컨대,「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그녀의 용기가 부서지면서 점차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소심한 선교사처럼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나을 거야」등의 텍스트는 여인의 심리 변화를 부각시켜, 이 후 그녀가 보인 일련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과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인의 심리 묘사보다 미장센 자체에 주목한 나머지, 부적절한 폭력에 무능하게 대응하는 여인을 방조자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관객은 이에 대해 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영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영화가 보여주는 미장센 자체는 소설 보다 뛰어나다. 단순 실명이 아닌 화이트 아웃에 가까운 실암(失暗)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영화 속 대부분의 배경을 흰색으로 사용하고 카메라 노출을 극단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공간과 공간 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화이트 아웃이 적절히 연출되었고 소설은 읽은 독자라면 상상에 그쳤던,「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진하고 균일한 백색」을 영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여인은 다시 시력을 되찾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다. 이제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 불과하며 단지 ‘눈은 멀었지만 보는 사람’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존재 할 뿐이라고. 영화 속의 ‘눈’ 역시 단순 생물학적 시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본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이성의 판단 요소로 연결되고 이를 반증하면 ‘시력의 상실’은 곧 위선의 카테고리까지 연결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순간에서 쉽게 내팽겨지는 이성의 나약함. 우리는 지금, 과연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