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봄에피어나다 | 1 ARTICLE FOUND

  1. 2010.03.20 구토

구토

PENSEE' 2010. 3. 20. 22:00


나는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서' 봐야 하는 인간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주
(단, 문학의 경우는 하루만에 읽어 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진득하게 한 권만 붙잡고 있을 성격이 아닌데다가
붙잡은 책은 텍스트 한 마디 마디를 정독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 놓고는 싸그리 반납 기한을 넘겨 버리기가 일쑤다

해서 별 수 없이, 나는 책을 사야 한다
이전까지는 가장 최장 기간에 걸쳐 읽은 책이 단테의 <신곡>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기록을 넘겨 버렸다
나는 <구토>를 무려 2년 동안 읽었다
한 파트, 한 페이지 또는 한 어절
집요하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로캉탱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구토를 느꼈다
존재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킬 정도여서 문득 괴로워진 적도 적지 않다
하루에 한 줄 가량을 읽어 나가며 겨우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괴로웠던 구절을 잠깐 소개해 본다
<나는 그 보다 더 오래 들여다 보았나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원숭이 이하의 단계, 곧 식물계의 끝에 있으며 문어의 수준에 있다.>
로캉탱은 거울 속 자신에게서 원숭이도 아닌 식물 또는 연체 동물의 무엇을 느낀다
나는 문득 정지연 감독의 <봄에 피어나다>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에서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느끼며 먹는 것을 거부하던 한 여고생이
껍데기를 훌훌 벗어 던진 채 떨어지는 비를 함빡 맞고 나서야 비로소 미소 짓던 그 모습을.
식물적 욕구는 인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선행 되어야 했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 단계를 건너면 그 뒤는 무엇일까
거울 속의 최종적 존재자는 무엇일까
어쩌면 유기체도 아닌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가령 큐비즘이 만들어 낸 인간 표상의 편린들처럼 그것은 기계 또는 사물로 존재 할는지도 모른다

나는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부여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됐건, 확실한 것은 다시는 이 책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래서 사르트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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