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PENSEE' | 6 ARTICLE FOUND

  1. 2010.07.27 내 꿈이 컸던거야? 3
  2. 2010.07.12 학부모회 강원도교육감 지지, 교과부 규탄에 나서 6
  3. 2010.07.04 힘 있는 詩 1
  4. 2010.03.20 정치적 성향
  5. 2010.03.20 NOTHING
  6. 2010.03.20 구토

내 꿈이 컸던거야?

PENSEE' 2010. 7. 27. 20:57

나름 꿈은 컸다.
일을 시작하더라도 영어 공부는 꾸준히 하고 싶었고 책도 한 주에 한 권씩은 읽고 싶었다.
여유가 조금 더 생긴다면 썩어가고 있는 기타를 다시 연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등산이나 스쿼시 같은 운동을 시작하고 싶기도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이제 주마다 한 번씩 <시사IN>을 사서 읽는 것도 벅차다.
메일로 배달되는 텝스 문제도 채 클릭하기 전에 삭제하기 일쑤다.
일한답시고 게을러진 사람들을 경멸했었던 내가
똑같이 게을러지고, 똑같은 핑계를 대기 시작한 것이다.

"바쁘니까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쩐지 서글프다.

이제, 매일 글 몇 줄이라도 끼적여보려 한다.
조금씩 꼼지락 대다 보면 틈이 생겨도 생기겠지.
AND

 

기사등록 일시[2010-07-12 15:19:22]

【춘천=뉴시스】 강은혜 기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일제고사 관련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밝힌 가운데 학부모회가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12일 오후 2시께 학부모회를 비롯한 진보 시민 사회단체는 강원도 교육청 정문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 보장을 지지하고 교과부의 교육 자치 간섭을 규탄하는 기자 회견을 가졌다.

13일부터 실시되는 전국 학업 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이미 "미응시 학생에게는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며 교과부의 압력까지 감수 할 것을 밝힌 상태다.

이날 모인 학부모 단체는 민병희 교육감의 의견을 지지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은 교육 관료를 문책하고 흔들림 없이 공약사항을 이행할 것을 당부했다.

이들은 특히 교과부측의 '직무이행명령' 발언에 대해 자치 간섭 중단을 요구하며 헌법에 명시된 학생·학부모의 교육권을 보장할 것과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 성취도 평가를 표집으로 전환 할 것 등을 촉구했다.

또 “교육청 문턱 안으로 들어와 발언하기가 정말 오랜만”이라며 “앞으로도 학부모와의 대화로 교육을 이끌어 나가는 도교육청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비쳤다.

한편 영국의 경우 이미 일제고사(SATS) 감독에 반대하고 나선 학교에 대해 박물관 견학 및 자연 학습 등의 자율적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다.

AND

힘 있는 詩

PENSEE' 2010. 7. 4. 00:40

김수영의 '파밭가에서'는
내 책상머리에 붙은 포스트잇 글귀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다.
언젠가 내가 힘들 때 정신적으로나마 나를 지탱해 주었던 힘 있는 시.
시도 얼마든지 힘 있고 현실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시에게 종종 신세를 져야 할 듯싶다.



김수영 <파밭가에서>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AND

정치적 성향

PENSEE' 2010. 3. 20. 22:23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체크해 볼 수 있는 사이트
http://h21bbs.hani.co.kr/politicalcompass/
정확히 2008년 10월 29일에 테스트한 결과는,
시장 자유 -5.75
개인적 자유 -3.44 였는데 그 사이에 내 성향이 많이 바뀐 모양이다





시장 자유에 있어서 홍정욱, 개인적 자유에서는 달라이 라마와 비슷하다고 나왔다
홍정욱과 달라이라마의 조합이라니. 웃긴다


AND

NOTHING

PENSEE' 2010. 3. 20. 22:08



나는 아포리즘을 싫어했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사실을 부유한 문장력으로 휘둘려 놓은 것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도 좋아하지 않았고 이 같은 맥락에서 자기계발서 같은 것은 책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다고승덕 변호사 책이나 홍정욱 7막7장, 이런 거 감명 깊게 읽었다는 애들이랑은 말 섞기 싫었을 정도였으니까

고1 즈음 나는, 웃기지만 출가를 생각했을 정도로 불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너무 심취해서 염주까지 사오고 했을 땐 하나님 믿는 아빠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랬었던 것 같다
당시 스님들의 책(예컨대 틱낫한 같은)을 많이 읽었는데
나는 그 책의 단어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늦 봄 어느 바닷가의 아직 손 타지 않은 모래알처럼, 그 책의 낱말 하나 하나는 나에게 맑고 투명하게 다가왔다물론 그 문장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박성룡 시인이 '풀잎'이라는 단어에서 맹목적인 아름다움을 읽었듯이
나도 그 낱말들의 배열이 마냥 아름답고 고귀하고 청아한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때 불교에 심취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어떤 아름다움, 더 나아가 '뭔가 있어 보이는'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뿐이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들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단순한 그림 한 장'으로 모든 화두들을 마음에 각인했다
그러니 그 편협한 사고에 이제껏 갇혀있을 수 밖에 없던 거였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많이 변했다
어떤 책이 어떤 그림이, 또는 어떤 사진이 어떤 영화가 나를 변화시켰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하고 왈가왈부 설명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다행히 그 낱말들을 낱말이 아닌 문장으로, 문장이 아닌 사유로, 사유가 아닌 無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있어 보이는 글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진부한 자기계발서가 때로는 진리이며, 동시에 그 모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니 글을 읽기가 수월해지고 오히려 포용력이 넓어졌다
왜냐면 어차피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므로 

지금 나는 오쇼 라즈니쉬를 읽고 있다
예전에 접했다면 내가 꽤 고민했을법한 인물이다
그의 글은 '있어 보이는 아름다움'과 '뻔한 말씀들'의 경계에 놓여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글을 두고 판단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사심 없이 읽고, 과감하게 버리고, 동시에 오롯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AND

구토

PENSEE' 2010. 3. 20. 22:00


나는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서' 봐야 하는 인간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주
(단, 문학의 경우는 하루만에 읽어 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진득하게 한 권만 붙잡고 있을 성격이 아닌데다가
붙잡은 책은 텍스트 한 마디 마디를 정독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 놓고는 싸그리 반납 기한을 넘겨 버리기가 일쑤다

해서 별 수 없이, 나는 책을 사야 한다
이전까지는 가장 최장 기간에 걸쳐 읽은 책이 단테의 <신곡>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기록을 넘겨 버렸다
나는 <구토>를 무려 2년 동안 읽었다
한 파트, 한 페이지 또는 한 어절
집요하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로캉탱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구토를 느꼈다
존재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킬 정도여서 문득 괴로워진 적도 적지 않다
하루에 한 줄 가량을 읽어 나가며 겨우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괴로웠던 구절을 잠깐 소개해 본다
<나는 그 보다 더 오래 들여다 보았나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원숭이 이하의 단계, 곧 식물계의 끝에 있으며 문어의 수준에 있다.>
로캉탱은 거울 속 자신에게서 원숭이도 아닌 식물 또는 연체 동물의 무엇을 느낀다
나는 문득 정지연 감독의 <봄에 피어나다>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에서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느끼며 먹는 것을 거부하던 한 여고생이
껍데기를 훌훌 벗어 던진 채 떨어지는 비를 함빡 맞고 나서야 비로소 미소 짓던 그 모습을.
식물적 욕구는 인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선행 되어야 했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 단계를 건너면 그 뒤는 무엇일까
거울 속의 최종적 존재자는 무엇일까
어쩌면 유기체도 아닌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가령 큐비즘이 만들어 낸 인간 표상의 편린들처럼 그것은 기계 또는 사물로 존재 할는지도 모른다

나는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부여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됐건, 확실한 것은 다시는 이 책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래서 사르트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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