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오쇼라즈쉬니 | 1 ARTICLE FOUND

  1. 2010.03.20 NOTHING

NOTHING

PENSEE' 2010. 3. 20. 22:08



나는 아포리즘을 싫어했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사실을 부유한 문장력으로 휘둘려 놓은 것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도 좋아하지 않았고 이 같은 맥락에서 자기계발서 같은 것은 책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다고승덕 변호사 책이나 홍정욱 7막7장, 이런 거 감명 깊게 읽었다는 애들이랑은 말 섞기 싫었을 정도였으니까

고1 즈음 나는, 웃기지만 출가를 생각했을 정도로 불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너무 심취해서 염주까지 사오고 했을 땐 하나님 믿는 아빠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랬었던 것 같다
당시 스님들의 책(예컨대 틱낫한 같은)을 많이 읽었는데
나는 그 책의 단어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늦 봄 어느 바닷가의 아직 손 타지 않은 모래알처럼, 그 책의 낱말 하나 하나는 나에게 맑고 투명하게 다가왔다물론 그 문장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박성룡 시인이 '풀잎'이라는 단어에서 맹목적인 아름다움을 읽었듯이
나도 그 낱말들의 배열이 마냥 아름답고 고귀하고 청아한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때 불교에 심취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어떤 아름다움, 더 나아가 '뭔가 있어 보이는'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뿐이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들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단순한 그림 한 장'으로 모든 화두들을 마음에 각인했다
그러니 그 편협한 사고에 이제껏 갇혀있을 수 밖에 없던 거였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많이 변했다
어떤 책이 어떤 그림이, 또는 어떤 사진이 어떤 영화가 나를 변화시켰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하고 왈가왈부 설명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다행히 그 낱말들을 낱말이 아닌 문장으로, 문장이 아닌 사유로, 사유가 아닌 無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있어 보이는 글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진부한 자기계발서가 때로는 진리이며, 동시에 그 모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니 글을 읽기가 수월해지고 오히려 포용력이 넓어졌다
왜냐면 어차피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므로 

지금 나는 오쇼 라즈니쉬를 읽고 있다
예전에 접했다면 내가 꽤 고민했을법한 인물이다
그의 글은 '있어 보이는 아름다움'과 '뻔한 말씀들'의 경계에 놓여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글을 두고 판단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사심 없이 읽고, 과감하게 버리고, 동시에 오롯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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