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레논 컨피덴셜

CINEMA 2010. 3.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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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범죄는 나날이 잔인해지며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지도 오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고매하고 성스런 '영웅'이란 존재를 갈구하고 또 창출해낸다
그리고 그럴 땐, 배트맨이니 슈퍼맨이니하는 너무 '먼' 영웅들보다는 존 레논 같은 '가까운' 영웅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존레논과 그의 연인 요코의 기행(奇行)이나, 그들의 히피 정신 또는 평화 수호 등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연하기만 했던 그에 대한 이미지들을 스펙트럼처럼 하나하나 펼쳐 내,
관객들로 하여금 그를 재발견하도록 유도한다는데서 이 영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삶에서 희망을 읽어 냈고 실행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냈다면
이 영화에 있어 당신은 성공한 관객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거기까지. 
제 아들 하나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던 존레논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 주고 세상을 끌어안게 하는 영웅 놀이는 이제 좀 지겨운게 사실이다

 

AND


영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누벨바그(Nouvelle vague)’라는 단어는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하다. 하지만 정작, ‘누벨바그’라는 단어를 명확히 정의 할 수 있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더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누벨바그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단편적인 영화적 지식이나 몇몇 유명 감독들의 작품만으로 누벨바그를 정의하려 하는 오류들을 흔히 접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이런 방법으로 누벨바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접근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벨바그의 참 이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벨바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21세기의 우리는 누벨바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누벨바그’는 「렉스프레스(L'Express)」라는 프랑스의 한 주간지 기자였던 ‘프랑수아즈 지루’에 의해, 1957년에 만들어진 단어다. 프랑스어로 ‘New Wave’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그 연원에서도 알 수 있듯 애초부터 영화학에 근원을 둔 것이 아닌 저널리즘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누벨바그가 ‘영화 사조의 변화’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어, 1950년대의 프랑스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ㆍ문화적인 흐름’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즉 누벨바그는 영화사로서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벨바그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 사회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먼저 이해해야 하며, 누벨바그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개혁적 사유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Ⅱ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정치는 물론이고 문화 전반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전후 당시, 황폐화된 도시와 실업율의 증가로 인한 피폐한 모습을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이 때 생겨난 사조가 바로 ‘네오-리얼리즘’이다.
당시의 촬영은 제작 자금과 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영화에 필수적인 조명이나 세트ㆍ스타급 배우의 기용 대신, 자연광과 로케이션ㆍ아마추어 배우를 이용해 이루어졌다. 네오-리얼리즘의 이러한 촬영 정신은, 열악한 상황을 뛰어넘는 예술 정신으로서의 의의 뿐 아니라 영화의 내러티브 속에서 사회와의 관계를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당시 정부가 쉬쉬하던 이탈리아 시민의 피폐함이 화두로 오르게 되었다는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가상의 공간이었던 프레임 속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투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누벨바그가 태동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네오-리얼리즘에서 사용한 자연광ㆍ로케이션 등의 촬영 기법을 차용했다. 그들이 네오-리얼리즘에 대해 특히 높게 산 것은 ‘리얼리즘’이라는 사유였는데, 여기서의 리얼리즘이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누벨바그의 감독들이 가장 혐오했던 바였다. 이에 대해서는, 장 뤽 고다르가 ‘점프 컷’을 통해 영화 전반의 컨티뉴어티를 무너뜨림으로써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일 뿐이다’라고 관객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음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향하는 ‘리얼리즘’이란 어떤 것인가.

1954년 1월, 알제리 전역에서 인민해방전선(FLN)의 전사들이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알제리 전쟁이 시작된다. 그 해 10월 프랑스는 알제리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근 8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전쟁이 계속됐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 이 일그러진 전쟁에 대한 반성과 고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검열 등의 이유로 인해, 1955년 이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알제리 전쟁에 대해 다룬 프랑스 영화는 전체 영화 중 단 1%에 불과했던 것이다. 조르주 사둘은 이에 대해 “알제리 전쟁이 진행되는 7년 동안 어떤 장편 영화도 그 근본적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1960년에 와서 121명의 예술가들이 정부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알제리 민중에게 가해지는 공격 행위에 반대하고 프랑스 민중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알제리인들을 돕자는 것이었다. 이에 서명했던 예술인에는 프랑소와 트뤼포, 알렝 레네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곧,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예컨대,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 Le petit soldat≫이나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등이 이런 움직임에서 제작된 영화 들이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영화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질로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영화를 프랑스인의 타자적 시각에서 바라 본 비객관적인 소산물에 불과하며, 알제리인의 실상을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하는 것이 그러한 시각에서의 비평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당시, 검열 강화 정책으로 인해 질로 폰테코르보의 그것처럼 직접적인 내용들을 다룰 경우 모두 삭제되기 십상이었다는 점이나, 오랜 침묵과 사회적 압박을 깨고 예술인 스스로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어났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단편적인 소극적 의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196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알제리 전투≫의 황금사자상 발표에 대해 반발하며 프랑스의 영화 관계자들이 집단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에 남아 박수를 쳤던 것은 누벨바그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누벨바그 감독들은, 네오-리얼리즘의 그것처럼 거칠고 직접적인 방법 또는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리얼리즘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에 의한 인간 내면의 모습이나 존재에 대해 다룸으로써 다른 의미에서의 리얼리즘을 이루어 냈고, 이는 누벨바그 감독들이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하던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Ⅲ 

사회적 측면에서의 누벨바그 영화는 이처럼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개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를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감독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어떠한 철학적 사유가 그들의 작품을 통해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남이 써준 시나리오를 가지고 카메라만 돌리는 ‘수동적 의미의 감독’이 아닌,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마치 글을 쓰듯 촬영을 해나가는 ‘작가적 감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이것이 바로, 누벨바그에서 가장 중시했던 ‘작가주의 (Politique des Auteur)’ 정신이다.

작가주의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54년「까이에 뒤 시네마」1월호를 장식했던 프랑소와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논문을 통해서였다. 감독의 창조적 개성을 반영한 영화가 진정한 영화라고 이야기한 이 논문은,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영화 속에서 꾸준히 탐구하는 감독을 ‘작가(Auteur)’로 규정했다. 사실, 누벨바그 감독들 모두가 스스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시나리오의 일부에 참여하는 최소한의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작품 자체에 개입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작가주의의 확산은, 격하되었던 헐리웃 영화감독에 대한 재평가로도 이루어졌다. 클로드 샤브롤과 에릭 로메르가 히치콕을 진정한 작가로 평가하는 책자를 쓴 것을 계기로, B급 감독으로 치부되던 히치콕에 대한 격상이 이루어진 것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치콕의 영화들은, 굳이 감독의 이름을 대지 않아도 그의 영화임을 짐작케 하는 어떤 색(色)을 가지고 있다. 숨 막히는 서스펜스적 요소라든지, ‘맥거핀’이라 불리는 추리상의 함정 장치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다르와 트뤼포ㆍ로메르 등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각자의 개성을 투여한 방식의 촬영 기법과 각자의 철학적 플롯으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들이 작가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한 여러 방법 중에서는 다음의 공통분모를 꼽아 볼 수 있다.  

우선, 누벨바그 영화들은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단순히 ‘싸게 찍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영화는 자금을 투자한 제작자의 제약 하에서 촬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누벨바그 감독들은 이를 거부하고 감독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촬영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출에 있어 유연성을 획득한 이들 영화는, 흥행에까지 성공을 거두게 됐고 이는 누벨바그 감독들을 스타덤에 올리는 계기로까지 작용한다.
둘째로, 자연광의 사용과 로케이션 촬영을 들 수 있다. 이는 네오-리얼리즘의 재현이자,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촬영하고자 했던 의도적인 뉴웨이브적 성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촬영 방식은, 스튜디오에서의 작위적 촬영에 비해 리얼리즘을 부가하는데 있어서도 단연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누벨바그 감독들은 ‘즉흥성’을 미학적 요소로 사용했다.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의 틀에 맞춰 정형적으로 촬영되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한 즉흥적 연출은,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우연적 요소와 결합됨으로써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미학을 가능케 했다. 예컨대 로케이션 촬영을 함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현장음을 삽입해 깨끗하지 않은 음향을 흘려 보내는 기법은, 과거 현장음을 삭제해서 배우들의 대사만을 깨끗하게 내보내는 방식과 대비되어, 어지럽고 잔혹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배우에게 직접 즉흥적 대사를 치게 한다든지, 아무런 주문 없이 배우 스스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등의 즉흥적 연출이 자크 로지에의《아듀 필리핀》, 자크 리베트의《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 에릭 로메르의《녹색 광선》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좀 더 심도 있게 해석하자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치로 이해 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앞서 거론한 누벨바그의 리얼리티로 연결되는 알고리즘 역할로까지 도착된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실험적 촬영 기법을 들 수 있다. 여기서의 촬영 기법이라 함은, 오손 웰즈가 《시민케인》에서 사용한 ‘딥 포커스’ 같은 수려한 테크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실험적인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는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주인공도 아닌 사람을 2분 이상이나 따라 다니며 프레임에 담는다. 뿐만 아니라 고다르는, 난데없는 점프 컷이나 프리즈 프레임으로 플롯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어 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기법 시도는, 이전의 촬영 기법이 좀 더 매끄럽고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이루어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의도한다. 즉 영화의 흐름을 깨버리고 극은 거칠게 만들어 버려서, 결국에는 그야말로 ‘영화 같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효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효과를 의도한 것일까.  


Ⅳ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영화를 ‘영화’로 생각하지 않고 ‘실제’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의 무지함을 부수기 위해 노력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영화 같지 않은 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는 감독의 눈으로 조작된 것이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심지어는 객관적이라 믿었던 ‘다큐멘터리’조차도 감독의 눈으로 재해석 된 것이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적 장치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초의 다큐멘터리였던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에서는 에스키모인의 생활을 감독이 의도한대로 끼워 맞추기 위해 작위적 상황을 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이끌고자 한 움직임은,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기 이전에 이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출발이었다. 끊임없는 비판과 끊임없는 부정을 통해 진실과 진리가 드러났고 그만큼 관객의 수준은 향상되었으며, 영화가 진정한 의미의 제7의 예술로서의 두각을 드러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보고 즐기기만 했던 영화가,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으로 거듭난 것이다.   

‘진정한 적은 자기 자신이다’라는 칭기즈칸의 어록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진실이라고 한번 단정 지은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심하려들지 않는다. 이러한 습관은 작게는 개인의 무지(無知)에서 크게는 사회 전체의 무지로 이어지게 되고, 단순한 학습의 부재에서 극단적으로는 정치 권력적인 악용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미 규정되어진 그대로를 비판력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누벨바그가 지양하고자 했던 최대의 악습이었으며, 작가주의와 실험적 촬영이 지향한 귀결점일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순행하지 않고 당당하게 역행을 선언하여, 오히려 그 방향을 순행으로 이끌어 냈던 누벨바그.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비판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수많은 현대인에 있어, 누벨바그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지금 당장 실행되어야 할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일 것이다.


참고 문헌 

류상욱, 「영화의 철학과 미학-프랑스 영화학의 경향」, 철학과 현실사
스티븐 디 캐츠(김학순ㆍ최병근 옮김), 「영화 연출론: 개념에서 스크린까지의 시각화」, 시공사(주)키노네트,「KINO 中 알제리, 누벨바그의 정신-유럽바깥에서 질문하는 타자」류상욱, 1999년2월호
문화학교 서울, 1996,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영화탄생 100주년 기념 걸작 100선」, 문화학교 서울루이스자네티(김진해 옮김),「영화의 이해: 이론과 실제」, 현암사
장 피에르 장콜라(김혜련 옮김), 「프랑스 영화사」, 동문사
워렉 벅렌드(장석용·정재우 옮김),「영화연구」, 현대미학사, p.161~190
전찬일, 세계 영화사 강의, 디지털 문화 예술 아케데미 Artnstudy, 동영상강의 9강 참조, http://www.artnstudy.com/
<씨네 21 영화 정보> http://www.cine21.com/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야후 코리아 백과사전 http://kr.dic.yahoo.com/search/e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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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상세보기

'Elephant in the room' 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방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이야긴데, 누구에게나 보이는 거대하고 확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섣불리 말을 꺼내려 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일종의 '불편한 진실' 쯤으로 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엘리펀트>의 코끼리 역시, 위의 문장에서의 코끼리를 의미한다. 감독은 우리에게, 무언가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에메랄드 빛 하늘이 눈부신 가을. 평범한 학교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아이들이 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를 대신해 운전하는 John,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을 찍는 Elias, 운동부 Nathan과 그의 여자 친구 Carrie, 늘 혼자 지내는 말수 적은 왕따 Michelle,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 쇼핑과 다이어트 등이 화제 거리인 Brittany와 Jordan 그리고 Nicole, 수업 시간에 아이들로부터 오물 세례를 받아내는 또 다른 왕따 Alex와 친구 Eric. 그러나 고요했던 일상은 Alex와 Eric이 주문했던 총을 택배로 받으면서 서서히 깨지게 되고, 무장을 한 채 학교를 들어서는 둘을 John은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이 영화는 <아이다호>와 <굿윌헌팅>을 감독한 구스 반 산트의 2003년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2003 칸영화제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는데 이에 대해, 걸작이라는 호평과 과대평가 된 평범한 영화레 불과하다는 혹평이 맞선바 있다. 실례로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와 전찬일씨의 토론을 들 수 있는데, 혹평을 했던 전찬일씨의 의견은 이렇다. 이 영화가 주목 할 만한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철지난 60년대 유럽작가 스타일에 불과할 뿐이고, 구스 반 산트가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하지만 칸의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받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배경음악으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사용한 것과 지나친 롱테이크나 들고찍기 등을 예로 들며, 맹목적인 음악의 사용으로 억지스런 감동을 자아내려 했던 점이나 각각의 작가적 징후로 읽혀져 오히려 작위적을 느껴진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외에도 그는, 감독이 아무런 설명도 가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히틀러주의자'라는 설정이나 '동성애 코드의 키스 장면'등을 통해 아이들이 살인을 저지르제 된 이유를 나치즘과 호모 포비아적으로 기분 나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 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월광 소나타'의 삽입은 촌스러운 신파적 요소에 지나지 않고, 롱테이크는 작가주의를 표방한 쓸데없는 기법의 남용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이 바라보던 TV속의 히틀러는, 과연 그들을 히틀러주의자로 인식하게 할 만큼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을까.



영화는 눈부시리만치 푸른 하늘과 길게 솟은 가로등으로부터 시작한다. 편광필터의 사용으로 반사광이 제거된 화면은 굉장히 회화적이고, 영화가 다루고 있는 '컬럼바인 총기 난사' 라는 무겁고 어두운 주제와는 상반될 정도로 맑고 아름다운 느낌까지 자아내는데, 이것은 일종의 반어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늙은 아내가 쓸쓸히 죽어갔던 날을 그린 소설이 '운수 좋은 날' 이라는 반어적 제목을 만나, 우리에게 더 씁쓸함을 남겼던 것처럼 말이다. 푸르렀던 하늘에 점점 어두움이 드리우자 가로등에는 작은 불이 하나 켜지고 영화는 다음 씬으로 넘어간다. 자동차 하나가 아기자기한 마을길을 느린 속도로 비틀비틀 누비는가 싶더니, 옆 잔디 쪽을 살짝 들이 받을 뻔 하고는 이내 멈춘다. 그리고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John'이라고 쓴, 일종의 인물 설명의 짧은 컷이 지난다.

영화는 이처럼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중간중간에 삽입해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저 이름을 드러내는 것일 뿐 그 인물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나 서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단편적인 몇몇 시퀀스들을 통해, '이 아이는 이런 성격에 이런 상황이겠거니' 하고 관객이 나름대로 판단해 볼 뿐이다. 사실, 길어야 120분 남짓의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그 인물에 대해 설명해 봤자 얼마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알리'나 '역도산'같은 일대기적 영화를 봤다고 해서, 우리가 그 둘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애초에 그런 오산으로 가는 길 자체를 봉쇄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흡사, 여러 사람들을 잠깐씩 만나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현대인의 삶을 연상시키고 있고, 이것은 곧 리얼리티를 창출한다. 실제로, 연기하는 아이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로서 고등학생들이고 실제 아이들의 이름은 동일하게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사용 되었다. 즉 스크린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십대 청소년 'John'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방황할 수 있는 시기의 여린 'John'인 것이다.




John은 대낮부터 술 취한 아버지를 대신 해 운전을 한다. 무기력하게 휘청대며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아버지는, 아이가 운전대를 잡자 사냥하러 가자는 둥 할아버지가 2차세계대전 때 일본군에게서 직접 뺏은 총을 주겠다는 둥의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는 그 이야기들을 곤히 듣고 있다가 "그거 다 거짓말이죠?" 라고 반문해버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은 모두 이런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득이 하게 지각을 한 John의 사정 따위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아이를 교무실로 불러 말없이 한심하게 쳐다보는 교장 선생님, 체육시간에 반바지를 입지 않는 Michelle에게 그 이유를 묻기 보다는 반바지를 입지 않으면 감점 시키겠다고 말하는 체육 선생님, 아이의 방을 뒤져 물건을 확인한다는 Brittany의 엄마, 그리고 심지어는 끝까지 얼굴조차 비춰지지 않은 채 문단속 잘하고 나가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서는 Alex의 부모.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이런 모습들이 그저 무책임하고 대화를 공유할 수 없는 불신적인 존재로 비춰 질 뿐이다. 그리고 어른들로 인한 아이들의 자기잠식은, 마침내 택배 직원이 Alex와 Eric에게 총이 든 상자를 건네 주면서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롱테이크 이외에도 시간을 자꾸 되풀이 하는 부분적 역순행의 구조나 의도적인 아웃 포커스 등 주목해야 할 요소들이 매우많다.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서, 영화에 사용된 미장센 중 반 이상을 차지하는 '복도' 에 주목하려 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미흡했던, 실제 컬럼비아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당시 실제 촬영 되었던 CCTV 화면이나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을 참고했는데, 실제 CCTV 장면을 보며 떠올린 이미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총을 든 채 여기저기를 휘집고 다니는 두 아이의 모습 사이로, 우왕좌왕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실제 사건에서 빚어진 아비규환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학교는 언제나 아이들에 비해 너무 큰 느낌이고, 복도는 쉬는 시간에만 아이들이 몇몇 나와 있을 뿐 대부분은 텅 빈, 공허함 그 자체의 상태이다. 심지어는 Alex와 Eric이 아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때조차 복도는 한산하고 아이들의 비명도 멀리서 들리는 듯 아주 작은 소리로 처리돼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의도적인 고요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 '복도' 란, 단순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넘어 아이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복도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마주치고 그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비단 타인을 확인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기자신을 확인하는 것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복도를 주 매개체로 하는 시퀀스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Elias가 카메라를 들고 묵묵히 복도를 걸어오고 있다. 조금뒤 반대편에서 걸어 온 John이 그를 향해 인사를 하자, 반갑게 웃으며 손인사를 하고 Elias는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자 John은 흔쾌히 포즈를 취하고, Elias는 늘 들고 다니는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이 때 종이 울리자 둘의 옆 쪽을 걸어가던 Michelle은 어정어정 뛰기 시작하고, 채 1-2분도 안되는 짧은 만남은 둘이 다시 인사를 나눈 뒤 뒤돌아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시퀀스는 Elias의 시선과 John의 시선, Michelle의 시선을 통해 세번 반복되는데, 앞의 두 경우는 거의 동일하게 그려지지만 Michelle의 시선을 통해 재현될 때는 Elias와 John이 아웃포커스 된 채로 그저 뿌옇게 표현되어, 황급히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그녀의 다급함과 폐쇄성 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굳이 그녀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그 미미한 폐쇄성은 여전히 보여지고 있다. 예컨대 반갑게 마주친 친구와의 대화가 아주 한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대화에 있어 서로의 깊은 내용을 묻는 등의 진전이 있기보다는 겉치레에 불과한 일상적 인사라는 것, 그리고 친구와 소통하는 방법이 '대화'가 아닌 '카메라' 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겉모습만을 찍어내는 카메라로는, 상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관계의 '진실성'도 결여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모습은, 후에 Alex와 Eric이 무장을 한 채 도서관으로 들어왔을 때도 다시 한번 재현된다. 총을 든 그들의 모습을 바라 본 Elias는 아주 초연히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겨누고 셔터를 누르는데, 이 모습은 마치 소통의 단절로 인하여 소외된 이들을 향한 마지막 확인사살처럼 보였다.






영화 내내 롱테이크로 인물 그 자체가 되어 묵묵히 아이들의 걸음을 따르는 카메라, 소통할 사람이 없는 휑한 복도, 그리고 아이들 간의 관계 단절과 개인주의적인 태도. 아것이 이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화의 단절은 모습만 바꾸어 가며 영화 내내 계속된다. 단짝 친구인 Brittany와 Jordan 그리고 Nicole이 식사를 하던 중,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만 피력하던 모습이나, 텅 빈 교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John에게 다가와 왜 우는지만 잠깐 묻고 뺨에 입을 맞춘 뒤 자리를 떠나는 조금은 방관적인 Acasia의 모습,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는 Elias의 말에 별다른 대화도 없이 승낙을 하고 피사체가 되어 준 펑크 커플의 모습 등은 상대의 대화를 들어주려 하거나 질문을 하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일상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은근한 개인주의 속에서의 단절로 인한 고독은, 운동부 아이들이 수업 중에 Alex에게 이물질을 던지는 대놓고 따돌리는 행위 보다도, 어쩌면 더 치명적으로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가 서로에 대한 가해자이자, 서로에 대한 피해자이다.





이제, 전찬일씨가 지적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에서 Alex가 연주했던 '엘리제를 위하여'나 '월광 소나타' 같은 음악이, 일종의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맹목적인 사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감동' 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면, 분명 음악의 사용은 플롯과는 무관한 억지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곡은 관객의 감동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Alex와 Eric 자신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정확히 영화의 서른아홉 번째 씬에서, Alex는 평온한 모습으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마, 총기를 구입 할 마음이 없을 당시 그의 심리는 그 곡처럼 매우 편안했을 것이다. 잠시 후 창밖으로 Alex를 찾아 온 Eric의 모습이 보이고 이윽고 그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기댄 채 노트북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곡의 평화롭던 부분이 끝나고 절정의 부분에 이르자 Eric이 서서히 클로즈 업 되고, 다시금 곡이 서서히 안정을 찾으려고 할 때쯤 모니터 속의 게임이 프레임에 비친다. 게임 속에는 이상하리만치 모두 뒤돌아서서 아무 저항도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는 캐릭터들이 띄엄띄엄 보이고, 뒤쪽에는 그들을 향해 겨누어진 총구가 보인다. 총알은 계속 발사되고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이 픽픽 고꾸라진다. 보다시피 이것은 Eric 또는 Alex의 그간에 걸친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고요를 깨고 자신들에게 닥쳐온, '따돌림'과 '무심함' 속에서 서서히 격해졌을 것이고, 급기야는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자들에게 총을 겨누고 싶어진 것이다. 다시금 침착함을 찾고 뒤이어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 하지만, 자꾸 실수가 생기고 버벅 대는가 짚더니 안되겠다 싶어진 Alex는 열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쾅 쳐버리고는 연주를 포기 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둘은, 총기 난사라는 일그러진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해 버리고는 자신들 역시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아이들이 히틀러주의자라는 설정을 꼬집은 전찬일씨의 다른 지적은 어떤가. 마흔일곱 번째 씬에서 Alex는 멍하니 앉아 TV를 보고 있다. 히틀러가 대중매체를 통제했다는 내용이 내오자 Eric이 그에게 무슨 프로냐고 묻는다. 그러자 Alex는 '나도 몰라' 라고 대답한다. 또 나치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卍)가 나오자, 요즘에도 저런 깃발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여기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정신 나갔으면 살 수 있지." 그러는 중, TV 위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택배회사 차량이 보이고, 이윽고 총기가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 온다. 이 씬에서 전찬일씨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히틀러가 나오고 있는 TV 화면이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이 고의로 심어놓은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TV 속의 히틀러가 아니라 창 밖에서 다가 오고 있는 '총이 든 상자' 이다.


 

(사진은 <볼링포컬럼바인>중 맨슨의 인터뷰)


실제로 컬럼바인 총기 난사가 있고 난 후, 정부는 이른바 '원인 해명'에 열을 올렸고, 그 원인으로 수면에 떠오른 것은 록 뮤지션 '마를린 맨슨' 이었다. 적크리스트나 사탄 숭배 등을 표방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 마를린 맨슨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화장과 무대 연출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은, 아이들의 집에서 그들이 즐겨 듣던 마를린 맨슨의 앨범이 다량 발견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마를린 맨슨을 즐겨 듣던 아이들이, 그의 사상에 동화되어 이러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무어는, 진실한 원인은 마를린 맨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구입을 자유로이 허가한 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볼링 포 컬럼바인>을 통해 피력한 바 있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구스 반 산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진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처럼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닌 일종의 장치, 즉 누구나 지목하기 쉬운 '나치즘' 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은밀히 진실을 흘리면서 말이다. 아이들의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나치즘이며 히틀러며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저 사람이 히틀러야?" 라는 질문까지 한다.) 그들이 총을 든 이유는 히틀러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게이여서도 아닌, 소통의 부재에서 온 것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는데 Eric이 교장을 포위하고 그에게 훈계를 하는 씬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분노 이유를 표출하고 있다.
"다음에 누군가가 따돌림을 당해서 당신을 찾아간다면, 나처럼 무시하지 말고 그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란 말이야 !"라고.

 

영화는 Alex가 자신을 심하게 따돌리던 Nathan과 그의 여자 친구 Carrie가 냉동창고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로 '누구를 먼저 죽일까요' 라고 장난스레 읊조리는 씬을 지나, 먹구름이 가득 낀 어두운 하늘을 비추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국 영화를 통해서 해결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감독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각자의 가슴에는 일종의 책임과 같은 묵직함을 남기고 크레딧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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